가장 아름답고 복된 순교자 - 죤 램버트
죤 램버트
우리가 받은 이 구원얻는 귀한 복음은 그저 받은 것이 아니다.
램버트는 노포크 주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에 능통하여 이 두가지 언어로 된 많은 글들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러나 시대가 험악했기 때문에 그는 영국을 떠나 해외로 가서 틴데일과 프리드와 합류했다. 그는 앤트워프에 있는 영국증권거래소의 시종으로 약 1년남짓 머물렀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의 공작과 바로우 라는 사람의 고발에 의해 앤트위프에서 체포되어 영국으로 호송되었으며 캔트베리 대주교 워램에게서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 대주교는 곧 사망했고 그 때 그는 석방 되었던 듯 하다. 그는 런던으로 돌아가 스톡스 가문의 자녀들에게 헬라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죤 램버트는 이 직업에 종사하면서 큰 칭찬을 받았으며 재산도 많이 모았다.
1538년 어느 날 그는 런던의 성 바울 교회에서 설교를 들었는데 당시 설교자는 테일러 박사였다. 설교가 끝난 뒤 램버트는 조용히 설교자에게 가서 함께 이야기 했다.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성찬에 관한 것이었다. 테일러는 램버트를 충분히 이해시키려는 마음에서 반즈 박사와 의논을 했다. 그러나 반즈는 이 일에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않는 듯 했다. 결국 램버트의 토론은 사적인 대화에서 공적인 문제로 확대 되었다. 그는 대주교 크랜머의 호출을 받아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변론하게 되었다. 당시 대주교는 성찬에 대한 그의 교리에 찬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후일 그는 열렬한 신앙 고백자가 되었다.
램버트는 토론을 하면서 주교들의 심문이 아닌 국왕폐하의 심문을 받겠다고 상소했다고 한다.
마침내 흰옷을 입은 국왕이 친히 이 논쟁의 재판관으로 임했다. 왕의 우편에는 주교들이 앉아 있었고 주교들 뒤로는 유명한 변호사들이 자주빛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왕의 왼편에는 귀족들과 판사들이 서열에 따라 앉아 있었다. 이 재판의 격식과 방법 자체만으로도 무죄한 사람을 굴복시킬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국왕의 무서운 얼굴과 찌뿌린 미간은 분노로 가득찬 마음을 나타내어 이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국왕은 엄격한 얼굴로 램버트를 바라본 뒤 고문관들을 향하여 돌아서서 치체스터의 주교 샘슨 박사를 불러 그날 모임의 원인을 선포하라고 명령했다. 샘슨 박사가 연설을 마친 뒤 국왕은 흰 비단천으로 만든 쿠션에 기대에 서서 마치 무서운 위협을 하려는 것처럼 찌뿌린 얼굴로 램버트를 바라보며 “허허! 선한 친구여!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어린양은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들은 나를 램버트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내 이름은 죤 니콜슨(John Nicholson)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국왕은 말했다. “무엇이라고? 그대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내 동생이라고 해도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믿지 않겠다”.
램버트는 대답했다. “오! 지극히 고귀하신 왕이시여! 당신의 주교들이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 뒤 국왕은 그에게 제단의 성찬에 대한 생각을 밝히라고 명령했다. 램버트는 자신을 변론하면서 먼저 국왕이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국왕은 노한 음성으로 그의 말을 중단 시키며 “나는 너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겉치례를 하지 말고 단도직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라. 제단위의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하는지 부인하는지를 대답하라” 고 말했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왕은 모자를 조금들어 경의를 표했다.
램버트:“나는 어그스틴의 생각과 같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답변 하겠습니다”
국왕:“어그스틴이나 다른 사람들은 거론하지 말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지 아닌지 분명히 대답하라”
램버트:“그렇다만 나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국왕:“주의하라! 이제 그대는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정죄를 받을 것이다”
국왕은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에게 그의 주장을 반박하라고 명령했다. 주교들의 되풀이 된 반론은 너무나 장황하여 쓸데없는 짓이었으며 아무런 설득력도 없었다.
마침내 해가 지고 횃불이 밝혀지자 국왕은 이 토론을 끝내려고 램버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많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논증과 가르침을 들었다. 이제 그대는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가? 그대는 죽기를 원하는가? 살기를 원하는가?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는가? 아직 그대에게는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 있다”
램버트는 “저는 폐하의 뜻에 복종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왕은 "그대 자신을 나에게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 고 말했다.
램버트는 “나는 내영혼을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위탁합니다. 그러나 내 육신은 폐하의 관대한 처분에 복종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국왕은 “만일 네가 나의 판단에 자신을 맡긴다면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단자들의 보호자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크롬웰에게 “크롬웰! 판결문을 낭독하시요” 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스미스 필드에서 화형을 당한 사람들 중에 이 복된 순교자 만큼 잔인하고 불쌍한 처분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잔인한 형리들과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의 두 다리가 타 버린 뒤, 불을 꺼 버렸다.
그리하여 조그만 불길이 밑에서 타고 있을 때에 그의 양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도끼창으로 그를 찔러 단창 끝에 올려 놓았다.
그는 손가락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 두손을 쳐 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직 그리스도,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도끼창 끝에서 다시 불속으로 떨어져 세상을 하직했다.
이것이 1538년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