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2. 04:30ㆍ조직신학
삼위 일체론 – 역사
정통 조직신학에서의 삼위 일체 [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
A. 삼위 일체론의 역사
삼위 일체론은 항상 난제였다 따라서 교회가 삼위일체론을 공식화 하려고 시도할 때, 그것을 합리화 하여 성경적 논거들에 정당성을 얻지 못하는 해석을 하려는 유혹에 반복하여 빠졌던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강조가 기독교회에 전달되었다 그 결과 더러는 신성 안에 인격적인 구분들을 아예 무시해 버렸으며, 더러는 성 삼위 일체의 제 2위와 제 3위의 본체적인 신성에 대하여 충분히 정의하지 못했다 터툴리안은 최초로 ‘삼위일체(Trinity)’라는 말을 사용하여 그 교리를 공식적으로 제시하였으나 그 제시는 불충분 하였는데 이는 성자를 성부에 부당하게 종속시켰기 때문이었다 오리겐은 이러한 방향으로 훨씬 더 나아가서 ‘본체에 관해서는’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성령은 또한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쳤다 그는 신성의 이러한 두 위격에서 본체적인 신성을 감소시켰으며 이렇게 해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제공하였는데,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를 성부의 제 1일 피조물로, 성령을 성자의 제 1피조물로 묘사함으로써,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였다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아라우스에 의해 주창된 4세기경의 기독교 이단. 그리스도 는 성부의 본질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된 자로서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있으 나 피조물 중에는 최초이며 가장 완전한 자라는 주장으로 결국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 하는 사상이다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하여 콘스탄티누스 2세 때에는 전 로마제국을 지배 할 만큼 세력을 떨 쳤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황제의 죽음(361년)으로 급속히 몰락했고 제 1차 콘스탄티 노플 공의회(381년)에서 니케아신조를 재 확인함으로써 다시 정죄되어 이 문제는 다시 대 두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성부와 함께 성자와 성령의 동질성(consubstantiality)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희생되었으며 신성의 세 위격들은 지위에 있어서 달라지게 되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여전히 신성의 세 위격론의 외형을 유지 하였지만, 이것은 단일신론(Monarchianism)에 의하여 완전히 희생되었는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관심에서였고 한편으로는 성자의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역동적인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은 예수 안에서는 인간만을, 성령 안에서는 영향력만을 보았다. 반면 양테론적 단일신론(Modalisttic Monarchianism)은 성부 성자 성령을 신적 본체가 계속적으로 나타난 현현의 세 모양으로 간주하였다 또 하나님의 유일성을 간과함으로써 삼신론(Tritheism)에 떨어졌던 사람들도 있었다 존 아스쿠나게스와 존 필로포누스와 같은 후대의 단성론자들(Monophysites) 중 어떤 이들이 이러한 오류에 떨어졌다 중세시대에는 유명론자인 로셀리누스가 같은 잘못으로 비난 받았다 교회는 4세기에 삼위 일체론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니케아 공의회(주후325년)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 본질임을 선언했고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주후381년)는 비록 니케아 공의회와 같은 정확함은 없었지만 성령의 신성을 주장했다 삼위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는 성자는 성부에 의해 발생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동방에서는 삼위 일체론이 다마스커스의 요한의 저작에서, 서방에서는 어거스틴의 위대한 작품 ‘삼위 일체론’에서 그 충분한 진술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전자는 후자에 의해서 완전히 제거된 종속의 요소들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2.종교 개혁 이후의 시대
종교 개혁 이후에는 삼위 일체론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으며 초기의 몇가지 잘못된 삼위 일체론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인 에피스코피우스, 쿠르셀레우스, 림보르는 소위 신성의 유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종속론을 다시금 부활시켰다
[알미니안주의. Arminianism. 17세기 초 화란의 Leyden 대학에 신학교수로 있었던 알미니우스 (Arminius 1560-1609)의 반(反) 칼빈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신학입장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의 신학적 사상과 체계. 그들이 최초로 요구한 신앙 5개 조항은 ①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과 불신앙의 예지에 기초하여 선택하시고 또는 유기 하신다 ② 그리스도를 비록 믿는 자들만이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③ 인간은 너무나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과 선행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④이 은혜는 거절 될 수 있다 ⑤ 참으로 중생한 모든 사람이 확실히 믿음 가운데서 인내하느냐 하는 문제는 더 연구할 여지가 많다. 는 등인데 이는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포함되어 있는 구원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등의 교리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다른 위격들 보다 성부께 순서와 위엄과 능력에 있어서 분명한 탁월성을 귀속시켰다 영국의 사무엘 클라크와 루터교 신학자인 카니스도 이와 상당히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양태론(Modalism)을 가르침으로써 사벨리우스에 의하여 지적된 길을 따랐는데 예를 들면 임마누엘 스웨덴보르그는 영원한 신인(神人)이 성자에게서 육신이 되었고 성령을 통하여 활동하였다고 주장하였고 헤겔은 성부를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성자를 자기 스스로 대상화시키는 하나님으로, 성령을 교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간주하였다
[양태론(樣態論)(Modalism). 사벨리우스주의. 양태론적 군주신론 또는 성부 수난설의 또 또 다른 이름. AD 3세기 초에 융성하였던 신학운동, 소아시아에서 유래 한 듯 하다, 서머나의 노이투스는 성부 수난 사상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 에피고누스는 그 사상을 로마에 전하였으며 프락세아스와 사벨리우스는 로마에 이 사상의 강력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오늘날은 유니테리안주의가 사벨리우스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통일성을 어떻게 주장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풀려는 시도였다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다는 견해를 포기함으로써 그 대답을 얻었다 이들은 위격들의 위상을 한분 하나님의 양태들 또는 현시들로 축소시켰다 사벨리우스주의는 성부 하나님의 수위권을 나타내기 위해 ‘군주’라는 단어와 연결시킨 경우가 많다 이로써 성자와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일시적인 자기 계시 양태들이 되는 셈이다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이런 논거에서 성육신 하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고난 받으신 분도 성부 하나님이라고 한다(성부수난설)]
종교개혁시대의 소지니주의자들(the Socinians)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노선을 따랐으나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성령을 단순한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함으로써 아리우스보다도 훨씬 벗어났다 그들은 유니테리안파와 함께 예수님을 신적인 교사로 언급하고 성령을 내재적인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선구자들 이었다 끝으로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론에 관한 진술을 비지성적인 것으로 고려함으로써, 그러한 진술을 멈추고, 경륜적인 삼위 일체론, 즉 구속사역과 인간 경험 속에서 계시된 삼위일체론에 만족하여 남아있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제스 스튜어트, 알렉산더, 그리고 브라운 같은 사람들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삼위일체론에 대한 관심이 약화 되었으며 신학적 논의는 하나님의 인격에 좀 더 특별하게 집중되었다 브룬너와 바르트는 삼위 일체론의 중요성에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바르트는 삼위 일체론에 관하여 전반부에서 많이 다루었는데 계시론과 관련하여 그것을 논하였고 그의 교의학에서 220쪽이나 삼위 일체론에 할애했다 실제로 그는 교리를 성경에서 이끌어 내었으나, 형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다’라는 단순한 문장 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았다 하나님은 계시자(성부)요 계시(성자)이며 계시 됨(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고 스스로 계시이며 또한 계시의 내용이다 하나님과 그의 계시는 동일하다 하나님은 그의 계시 안에서도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시며 주권적인 하나님으로 남아 계신다 바르트의 이러한 견해는 사벨리우스주의의 일종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신성안의 세 위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어떠한 종속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손상되지 않는 유일성 속에서 계시자, 계시 계시됨인 동일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손상되지 않는 다양성 속에서, 이 삼중적 존재 양태가 정확히 기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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